독일 베를린 생활 블로그

아들 한글 깨우치기, 그리고 방법

2023-07-03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한국에서 산 날보다 독일에서 산 날이 더 많은 우리 아들과 끝까지 한국어로 대화하기 위해 한글 읽기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하고 싶었다.

아들 덕분에 나도 많은 어린이 책들을 읽고, 좋아하는 동화책도 생겼다. 하지만 그 과정이 여전히 너무 힘들다.

책을 많이 읽어줬다. 하지만 실패. 실패. 실패.

어렸을 때부터 책은 어느 누구보다 많이 읽어줬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우리아들은 문자에 대해 관심이 정말 0.01도 없었다.
많이 읽어준다고 한글에 관심을 가지고 혼자 깨우치는 건 우리집 아이는 불가능 하다는 걸 어느날 깨달았다.
우리 아들은 가끔 집이 조용하다 싶어 찾아 보면 앉아서 책을 보는 아이이다.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진짜 ‘그림만’ 본다.
5살 때 쯤 ‘우리아들, 너가 드디어! 깨우쳤구나.’ 라고 기뻐했는데.. 곧 그건 내용을 외운 거라는걸 알게 되었다. 룰루랄라.

한글 문제집 실패

6살 때쯤 한국에서 가져 온 한글책이라고 친구가 줘서 해보기로 했다. 짧은 글이 있는 책이고 그 내용에 대한 내용을 이해했는지 푸는 전형적인 한국 책이었다.
글을 읽는건 완전 불가능해서 내가 읽어주고 문제도 읽어줬는데.. 나보다 내용 파악을 잘해서 놀랐다.

하지만 내가 그 책 내용을 여러 번 읽어주고 한글 깨우치기는 이 책으로도 실패. 문제집을 동화책처럼 읽고 끝났다.

아들한글 책도 실패

우리아들은 공룡에 큰 관심 없어서 실패.

EBS 다큐를 보고 산 책도 실패

EBS에서 기초 문해력 향상 다큐를 봤다. 다큐를 보고, 그래 저거다! 라는 생각이들었다.

한국에서 온 뜨뜻한 책 사서 시도해봤다. 우리아들은 뭔가 공부라는 느낌을 귀신같이 안다.

몇 주 하고, 앞에 2단계까지 책은 읽는게 아니라 내용을 외우고 결국은 재미 없다며 실패.

축구에 관심있으니, 축구책을 읽자 실패

실패
실패
실패

포켓몬 캐릭터 백과사전 읽기 : 중타

포켓몬 캐릭터 이름을 읽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결국 책을 읽는 것을 목표로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받침이 많이 없고 포켓몬을 좋아하니 괜찮았지만, 다음단계로 넘어가는 중간 방책 이었다.

이 책도 읽어 주다가 실생활과 맞지 않는 단어들과 내 개인적인 취향이 맞지 않아 읽어주진 않았다. 흥미용으로 그림을 보고 이름을 읽는 연습은 혼자서 하긴 한 것 같다.

만화책이라도 보자.해서 결국 성공한 건,

학습만화 ‘살아남기 시리즈’ 였다.

매일 밤 자기 전에 30분 정도 책을 읽었다. 내용이 재미있는 시리즈는 몇 시간을 읽었다.
1. 아들, 넌 제목만 읽어! 내가 다 읽어 줄게. 이렇게 한 달. 10권.
무슨 뜻인지 모르고 글자만 읽을 때는 느낌이 온다. 뜻을 물어보고 모르면 뜻을 가르쳐줬다.

2. 두 번째 달은 제목과 만화 두 컷을 더 읽으라고 했다. 싫다고 못한다며 울고 불고 난리였지만, 그럼 같이 나도 난리를 쳤다. 그럼 나도 안 읽는다고, 나는 이거 다 읽었다고. 그렇게 또 10권
3. 점점 읽어야할 페이지를 늘렸다. 어떤 때는 두 쪽 읽으라고 하고, 어떤 때는 한 쪽만. 10권 더.

4. 그러던 어느 날 글이 짧은 동화책 한 권을 본인이 읽겠다고 하더니 혼자서 한 권을 읽었다.
아주 마법적으로 능숙하게는 아니지만, 읽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5. 여전히 한다. 10권 받고 10권 더! 시리즈를 거의 다 읽어간다. 읽은거 또 빌려와야 될 거 같다.

여전히 혼자 읽을 때 보면, 의성어만 읽고 어려우면 한숨을 쉬지만 이게 어딘가 싶다. 1년이 지나면 더 잘하지 않을까. 한국어 노출이 적다보니 어쩔 수 없다.
반면 독일어 읽기는 내가 한 게 별로 없는데도 발전이 느껴진다. 한글이 많이 압축적이고 효율적인 문자이다보니 진도가 안 나가 답답해하는게 느껴진다.

살아남기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은 지 4개월 정도 되었으니 40권은 읽은 듯.

뭐 개인적으로는 살아남기 책으로 내 상식이 조금 향상된 것 같은 느낌이다. 참고로 인체에서 살아남기와 비행기사고에서 살아남기가 제일 재미있었다.

그 외에도 시도한 것들은 많다. 직접 낱말카드도 만들어 봤다.

그냥 아들에게 맞는 걸 찾을 때까지 엄마가 지치지 않고 이것저것 꾸준히 시도하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